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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견-애완견-반려견, 우리집 강아지는 누구인가요

마스터 2023.12.18 08:10

 

 

강아지는 생명이다. 나도 생명이다.

생명과 생명으로서 우리집 강아지와 나의 무게는 똑같다.

그러나 우리가 눈으로 보는 이 세계에서 우리 집 강아지는 내가 보호하고 지켜주어야 비로소 생명의 무게만큼 대접받을 것이다.


번견이란 말 요즈음은 잘 안 씁니다. 불과 100년 전만 하더라도 강아지의 99%는 번견이었습니다. 사실 빈한한 살림에 굳이 지킬 것도 없는 집이 대부분이고, 그래서 보신탕용으로 키우는 강아지들도 더러는 있었겠지만 오늘날처럼 철제닭장 같은 시설에 수백 마리씩 가둬놓고 밀집해서 사육당하는 강아지는 없었다고 봅니다.

어려서 예방주사도 못 맞고 (강아지는커녕 사람 아기도 예방주사 맞기가 힘든 시절이었겠지요!) 피부병이 걸리거나 다리가 부러져도 치료받을 동물병원도 나라를 통틀어 몇 개 없었을 터이고, 강아지 사료공장도 없었으니 당연히 먹는 것은 사람들이 먹다 남긴 음식 찌꺼기였지만 그래도 어쩌면 그 시절의 집 마당을 차지한 강아지들이 요즈음의 아파트에 갇혀 사는 강아지들보다 자유롭고 행복한 면도 있었다고 봅니다.

사람의 관점에서는 당연히 좋은 집과 좋은 옷과 좋은 음식이 구비된 현대의 생활환경이 옛날보다 진화되었다고 하겠지만, 강아지의 눈으로 볼 때는 깨끗하고 폭신한 개집에서 잠자고, 위생적인 사료를 먹고, 일주일에 한 번씩 뽀송뽀송하게 목욕을 하는 생활보다도, 열린 대문 을 나서면 언제든지 마을 강아지들과 어울려 놀 수 있고, 무리지어 온 마을과 뒷산을 휘젓고 다닐 수 있었던 그 시절이 강아지의 동물적 본성에 더 쾌적한 생활환경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좋든 싫든 옛날은 사라져버린 과거이고 현재에 충실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사람도 강아지도.
요즘은 번견과 애완견과 반려견이 혼재해서 살아가는 시대입니다. 똑같은 어미 뱃속에서 나온 형제인데, 주인을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마냥 줄에 묶여서 마당을 지켜야하는 번견으로 살아가기도 하고, 이쁘게 치장하고 맛난 간식만 챙겨먹는 애완견으로 꾸며져서 공주님처럼 살아가기도 하고, 가족의 막내로서 어울려 같이 먹고 같이 자고 같이 노는 반려견으로 살아가기도 합니다. 누가 더 행복할까요?

그런데 그 결정을 강아지가 못합니다. 강아지의 운명이지만, 강아지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주인이 합니다. 부조리일 수도 있지만 현실이 그렇습니다. 같은 반려동물이라도 고양이는 조금 다릅니다. 주인이 마음에 안 들면 어찌 목줄이 풀린 틈에 독립해 버립니다. 야생으로 돌아가 사냥하고 번식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나름으로 자연스럽기도 합니다. 사람하고 사는 것이 편하면 사람집에 눌러앉아 있고, 불편하면 슬그머니 나가서 안 돌아옵니다.

그런 고양이의 야생성을 없애기 위하여 꼬리를 자르기도 하고, 수염을 깎아버리기도 합니다. 도망갈까 봐 하루 종일 줄로 묶어놓기도 합니다. 어쩌거나 고양이도 가축화된 동물이라 사람의 손아귀를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수천 년을 사람의 손에서 밥을 얻어 먹으면서도 고양이는 반쯤은 독립성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강아지는 완전히 늑대무리의 야성을 포기하고 사람에게 거의 절대적으로 귀의하였습니다. 생후 일 년이면 자기를 낳아준 어미개도 남 보듯 하지만, 자기 주인에게는 늙어죽을 때까지 어린 강아지처럼 재롱을 부립니다. 자기의 운명을 온전히 주인에게 맡긴 것입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사람들의 규율에 맞추어 만 년 이상을 살아오면서 강아지들은 사람의 몸짓과 마음을 읽어내는 능력이 다른 동물에 비하여 놀라울 정도로 발전해 왔습니다.

주인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라는 동일시하는 능력이 점점 강화되어 이제는 사냥본능보다도 더 표면적으로 강아지의 의식세계를 지배합니다. 즉, 주인과 함께 있는 자체로 강아지는 행복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반려견과 깊은 정서적 공감대가 형성된 주인은 거꾸로 강아지에게 동화되어 강아지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라고 느끼시는 분들도 많은 현실입니다.

옛날 할머님들이 손주 보고 “아이구, 내 강아지!” 하셨던 말씀으로 비추어보아, 반려견이라는 말이 생긴 것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반려견이라는 의식은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의식 속에 자리 잡아 왔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에도 강아지를 보고 “우리 아들”, “우리 딸” 하고 말씀하시는 분들에 반하여, ‘개새끼’를 사람취급 한다고 벌컥 화를 내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사물을 보는 가치관의 차이입니다. 꼭 누가 옳고 그르다고 분별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사람끼리의 문제는 그렇지만 강아지는 그렇지 않습니다. 강아지는 온전히 주인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합니다. 우리의 사람 자식은 크면 독립하지만, 강아지는 죽을 때까지 주인을 따르고 의지합니다.

우리는 우리 집 강아지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것입니다. (점차 동물의 생존권에 대한 인식이 생기면서, 주인이 주인의 역할을 못할 때, 주인의 권리를 박탈하는 법을 제정하는 나라들이 하나 둘 늘어가고 있는 추세입니다만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집 강아지에게 대한 ‘무한책임’이 따르는 것입니다.

이러한 무한책임에 대한 의식을 무겁게 가지고 우리 집 강아지를 대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올바르게 법에 보장된 인권의 보호를 받는 세상도 아직 요원한데 강아지의 생명에 대한 권리를 이야기하기는 사치스러울 수도 있으나, 적어도 내 손에 자기의 운명을 맡긴 우리 집 강아지만큼은 ‘나의 최선’을 다해서 보호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진정한 ‘반려견의 동반자’로서 요구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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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릿고개란 말이 살아있던 시절, ‘잘 살아보세!’ 란 구호와 함께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산아 제한’이 필요하다고 정부에서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란 표어로 온 나라의 TV와 신문과 교과서를 도배하면서 의식화를 한 결과로 1070년대부터 4인 가족 이하의 핵가족이 우리나라 사회의 주류가 되면서, 우리나라의 교육열도 높아지고 생활수준도 높아지고 배고픔의 고통에서 벗어났습니다.

한 세대 전, 우리나라의 성공사례를 강아지들의 생명권과 복지를 위하여 전 세계의 ‘강아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공감하고 강력한 실천이 따라야 한다고 봅니다. 이 세상에 강아지의 탈을 쓰고 태어나는 존재들이 제대로 대접받기 위해서는 강아지의 숫자를 조절해야 한다는 것은 ‘강아지족의 복지를 고민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하는 내용입니다.

인구대국 중국에서, 한정된 자원으로 인민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자녀 갖기 운동”을 오랫동안 전개하여 ‘인구 폭발’을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통제한 것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합니다.

‘전 세계의 강아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연합체’를 지향하되, 현실적으로 시간이 요원한 문제이므로 당장, 내 손 안에 있는 우리 집 강아지부터 꼭 필요하고, 종자가 우수한 종견이나 모견이 아니라면 함부로 새끼를 낳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이 내가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일입니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넘쳐나는 지금의 현실에서, 너무나 쉽고 값싸게 강아지를 분양하여 키울 수 있는 만큼 강아지의 교육이나 복지에 대하여 무신경하게 되고 (전통적인 태도이긴 하지만, 강아지족의 복지를 위해서는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청소년기, 사춘기를 아무런 사회화나 예절 교육을 못 받고 묶여만 있다가 성견이 되어서, 제대로 친화도 못한 주인이 강아지의 스트레스나 나쁜 버릇을 감당하지 못하면 낡은 인형 쓰레기통에 버리듯이 쉽게 강아지를 유기하는 현상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실일 것입니다.

내 강아지가 이쁘고 귀한만큼 다른 강아지의 생명도 귀한 것입니다. 45억년의 지구 역사 중에서 인류의 직계 조상이 아프리카에서 세계정복의 발걸음을 떼기 시작한 것은 불과 20만 년 전이라고 합니다. 20만년의 인류 역사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인권 사상, 여성의 권리, 아동의 권리, 장애인의 권리를 존중하기 시작한 역사는 불과 100년 남짓으로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아직까지도 보편적 인간의 생존권마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현실입니다. 그러나 노예 해방, 여성 해방이라는 짧지만 급격한 변화의 연장선으로 유추해보면, 보편적 생명으로서의 동물권, 생명권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유럽을 중심으로 일본, 한국에까지 서서히 인정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식용으로 먹는 동물들도 생명으로서의 존재에 대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명제가 앞으로 인류가 풀어야 할 새로운 숙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육식을 좋아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외면해 온 문제이겠지만, 우리 집 생명의 무게를 나 자신의 생명의 ‘생명의 무게’ 만큼 무겁게 느끼는 바로 그 순간부터 같이 고민해 보아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집 강아지가 온전히 생명 그 자체로서 나에게 대접받는 만큼 다른 사람들에게 대접받기를 원한다면 나도 다른 생명들을 그렇게 대접해야한다는 것을...

사진 펫푸드인더스트리



출처 : 뉴스펫(http://www.newspet.co.kr)  임장춘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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