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칼럼

전문가의 다양한 경험과 지혜를
여러분과 함께 공유합니다.

반려동물칼럼

우리가 몰랐던 반려동물 이야기를 전문가의 칼럼을 통해 풀어 드립니다

교육받은 강아지가 더 행복하다

마스터 2023.12.12 09:11

 

 

애완견이란 말은 20세기의 언어 같다. 18~19세기, 사람이 사람을 노예로 부리는 것이 인권침해라는 사상이 보편화되면서 도미노처럼 노예해방의 물결이 전 세계를 휩쓸고 갔다. 그리고 나서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참정권이 주어지고, 여성의 권리가 남성과 동등하게 인정받는 것이 아직도 미완인 나라들이 제법 많은 것처럼, 동물들에게도 감정과 생존본능이 있고, 그 생명권을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상은 아직까지도 보편화되지는 않았지만, 점점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와서 “나는 애완견을 사랑한다”고 말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시대에 뒤떨어진 견주라는 인식을 받게 되었다. 불과 십 년 전만 하여도 아파트단지에서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면, 이웃 주민들의 항의를 받고, 눈총을 피해서 새벽 일찍 또는 밤늦게 산책을 한 경험들을 이야기하고 공감하면서 울분을 토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목줄 풀린 개에게 물렸다는 뉴스가 일 년에 몇 번씩 저녁뉴스에 나오지만, 강아지 데리고 왜 나왔냐고 질문하거나 항의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는 드물어졌다.

 




우리사회에 스며든 반려문화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가족계획이 70년대 정부정책이었는데 21세기에는 셋째 아기를 낳으면 정부에서 육아보조금을 지원한다. 하지만 노처녀, 노총각이란 단어가 사라져버린 것처럼 결혼도 기피하고, 결혼을 하더라도 아기 낳기를 기피하는 사회적 현상이 발생하면서 키우는 강아지나 고양이에게 가족이라는 공감대가 확대되고 있다. 차츰차츰 애완견이란 말도 사어가 되어가고 반려견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일반화되고 있다.

반려견이라는 말에는 철학적인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인간이 아니더라도 가족공동체가 될 수 있다는 의식의 확장이 반려동물이라는 단어를 만들었고, 그 의미에 동의하면서 반려견, 반려묘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이 젊은층에서 노년층으로 확산되어가고 있다. 반면에 아직도 연간 십만 마리 가까운 유기동물들이 해마다 발생하고 있다.

가족을 버릴 수는 없다. 반려견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은 같이 먹고 자고 놀면서 희노애락의 감정을 공유하는 강아지나 고양이를 내가 조금 힘들다고 쉽게 버릴 수 없다. 싫증난 장난감을 쓰레기통에 미련 없이 던지듯이, 살아있는 생명을 길바닥에 내버린다면 그 사람의 의식은 ‘애완견’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반려동물을 키우지 못하도록 법으로도 규제해야 유기동물의 숫자가 줄어들고 그 처리비용의 국가예산도 절감될 것이다. 무엇보다 시민의식, 국민의식 수준이 ‘애완견’ 이란 말을 쓰는 나라와 ‘반려견’이라는 말을 쓰는 나라는 다를 수밖에 없다.

강아지를 한 마리 입양한다는 것은 아기를 입양하는 것과 같은 비중을 가진다. 진정한 반려인에게는. 내 동생이, 내 아들이, 내 딸이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진정으로 희망하고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많은 시간과 노력과 자본을 투자하는 것처럼 내가 입양한 강아지, 고양이가 행복하게 살아가고 이웃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받기를 원한다면 그만큼 노력해야 한다. 나도 우리 강아지도.

훈련은 강제적이다?

훈련이란 말은 딱딱하다. 군대를 연상시킨다. 내 아들이 군대 가서 고된 훈련을 받으면서 고생하는 것이 싫다는 감정이 우리나라 모든 부모님들의 잠재의식인 것은 공공연하다. 그래서 우리 강아지가 애견훈련소에 입소하여 교육을 받는다면 고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막연한 불안감을 반려인들은 은연중에 한다. 

훈련은 강압적이고, 폭력적이며, 억압적이다. 비효율적이다. 잘못하면 정서적으로 상처를 받고 트라우마가 생길 수도 있다. 이런 선입감에 훈련소를 보내야하나 말아야하나 망설이는 마음이 들면서, 차라리 내가 직접 교육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들도 많은 반려인들이 하고 있다. 그래서 요즈음 애견훈련소도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서 훈련보다는 교육이라는 표현을 하고, 훈련소라는 말보다는 학교라는 이름을 많이 쓰고 있다. 단어만 바뀐 것이 아니라 실제 내용에 있어서도 강아지에게 억압이나 폭력은 사용하지 않고, 강아지들의 본능과 특성을 이용한 교육으로 흐름이 바뀌고 있다.



무능한 리더는 억압과 공포로 부하들을 통솔하려고 한다. 그러나 부하들의 심리를 읽고 요구사항을 받아들이면서 합리적이고 능동적으로 이끌려면 섬세하게 부하들의 심리와 행동을 살피고 의견을 나누면서 자발적으로 복종하면서 따르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유능한 리더의 조건은 사람을 다룰 때 뿐 만 아니라 강아지를 다룰 때도 같이 적용된다. 

 

공부에 소질이 있는 학생이 있고, 운동에 소질이 있는 학생, 노래를 잘하는 학생이 있는 것처럼, 강아지들도 저마다 타고난 소질이 다르다. 안내견으로 뛰어난 소질, 수색견으로 타고난 자질, 심리적·육체적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 편안한 공감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치료견, 반려견으로 훌륭한 강아지들도 훈련이나 교육은 싫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공부를 싫어하는 사람도 초등학교, 중등학교 과정은 의무교육으로 이수해야 하는 것처럼, 강아지들도 인간사회에서 인간들과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받아야 하는 교육프로그램이 있다.

강아지 어릴수록 교육 효과 좋아

우리 강아지는 나하고 죽을 때까지 실내에서 생활 할 것이기 때문에 아무런 교육도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생활하시는 분들도 제법 많지만, 그렇게 되면 강아지가 살아가는 십 년 이상의 세월 동안 그 강아지는 굉장히 폐쇄된 공간에서 폐쇄된 관계에 갇힌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버린다.

행여 사연이 생겨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거나 바깥 산책을 하게 되면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낯선 존재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배우지 못해서 심하게 짖거나, 물거나, 급하게 뛰다가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실종되거나 하는 등이 불행한 사고를 당할 확률을 잠재적으로 안고 살아가게 된다. 시한폭탄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남자는 군대를 다녀와야 어른이 된다는 현대의 속담은 강아지에게도 잘 맞는 격언이다. 어린 강아지는 백지와 같아서 교육하기도 쉽고 잘 받아들인다. 그러나 일 년 이상 사회화, 친화교육 없이 단절된 소수의 사람들만 대하고, 묶여서 스트레스 받으면서 지냈다면 강아지가 가진 좋은 잠재력을 키우기도 몇 곱절 힘이 들 뿐더러, 굳어버린 경계심이나 나쁜 습관들을 고쳐주기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출처 : 뉴스펫(http://www.newspet.co.kr)  임장춘 소장



반려동물 전문 장례 서비스
1544-1482